<찬양의 본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21)
“The people I formed for myself that they may proclaim my praise.” – Isaiah 43:21
당신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답해야 할까요? 그저 매일의 삶을 간신히 버텨내기도 쉽지 않은 우리의 인생길에서, 인생의 목표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이야기가 얼마나 와닿겠느냐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존재 자체로 아름다우니 삶의 목적을 논해 무엇하겠느냐고 비판하는 인본주의자들의 목소리도 어렴풋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제게 삶의 목적을 묻는다면, 저는 망설임없이 앞의 말씀 구절로 답할 것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기에 오늘 나눔에서는 이 말씀에 대한 묵상을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말씀에 가장 앞 구절에서 명시되는 것은 “내가” 지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라틴어로는 “Imago Dei”라고 명칭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출발점에 대해 서술합니다.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 그 이름을 “스스로 있는 자”, 즉 야훼라고 나타내실 때부터 하나님의 완전성은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며,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이 피조물을 어떠한 목적성을 띠고 창조되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여러 구절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창조의 매 순간마다 반복되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해와 달과 별, 바다와 육지,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을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창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심히 좋았더라”고 기록합니다(창 1:31). 인간을 포함한 이 땅의 모든 세계는 우연히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의지와 목적 가운데 지어졌으며, 그분이 보시기에 좋은 피조물들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창조되었으니 그것으로 족할까요? 이러한 인본주의적 사고방식과 가장 궤를 달리하는 부분은 바로 “나를 위하여” 지으셨다고 언급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하여”라는 표현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어떠한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보시기에 심히 좋고 아름답고 선하게,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지만 존재 자체가 인간의 목적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삶이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말씀을 통해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권면합니다. “너희를 위해서 하라”거나, “먹고 마시며 삶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방향이다”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결국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라는 말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창조의 목적임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흐름은 결국 삶의 본질과도 연결됩니다. 본문의 마지막 구절에서는 분명하게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 분이 우리를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아 기뻐하셨고, 그럼에도 잘못된 선택을 내려 영원히 단절되었던 관계를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시키신 모든 이유는 하나입니다. 창조자 하나님이 피조물인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은 우리의 사명, 영원한 푯대는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시편 기자는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 69:30–31)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찬양받기 원하셔서 우리를 지으셨다고 말씀으로 분명하게 선포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따라오는 질문이 존재합니다. 찬양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일까요?
1. 찬양은 입술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 히브리서 13:15
2. 찬양은 끝없이 이어져야 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 시편 34:1-2
3. 찬양은 하나님이 하신 일과 그분의 위대하심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 시편 150:2
4.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 에베소서 5:19-20
이 모든 찬양의 정의들은 하나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찬양은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찬양은 우리 삶의 목적이며 찬송하는 자의 마음가짐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드리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찬양팀의 일원으로서, 찬양하는 모든 순간 온전히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회중의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심지어는 예배의 자리뿐만 아니라, 일상의 매 순간에서 찬양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시대와 환경 속에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약속하십니다.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이사야 61:3) 우리의 삶에 마주하는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에게 반드시 화관으로, 찬송의 아름다운 옷으로 입히시고 기름부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쁨으로 함께 찬양하기 원하시는 모든 청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