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가 묵상하고 있는 부분은 성도로서의 삶입니다. 여러가지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겪으며 그리스도인으로써 이 시기를 어떻게 이겨나가야 할지 고민하던 중, 문득 고등학생일 시절에 묵상하며 들었던 한 성경 구절을 기반으로 한 찬양을 떠올렸습니다. 이는 고린도후서 6장 4-10절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절에 기반한 성도의 노래(어노인팅)의 후렴 가사입니다.
우리는 무명하나 유명한 자요
죽음의 위기 속에도 참 생명 가졌고
근심하나 기뻐하며
가난하나 다른 이를 부요케 하는 자로다
모든 것 가진 자로다
성도로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이 세상은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짊어지게 합니다. 녹록지 않은 현실과 복잡한 인간관계, 불안정한 재정과 당장 한 걸음 앞도 알지 못하는 미래. 이 모든 것에 성도의 삶은 그리스도의 양심과 사랑, 영적인 시험마저 견디며 살아가는, 정말 좋을 것 하나 없는 삶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역사와 개인적인 신앙의 간증들이 있지만 문득문득 살아가는 동안에 내가 왜 성도로서 살아가고 있나 하는 질문이 숨을 내쉬는 매 초마다 드는 하루들이 있습니다. 솔직히 나누자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여전히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기나긴 우울을 견디며 삶을 바닥에서 겨우 잡고서 포기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당장 내일이면 어디로 이사를 가는지 알지못했던 시절, 그리고 굳이 가지 않아도 됬을 군대를 갔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전역을 할 때까지, 저는 분명한 이유는 모른채로 결국 성도의 삶을 선택했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지금까지 완벽하진 않지만 고집하며 이 미국 땅에 와있습니다.
잘 모르고 모두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이 결국 그리스도로 인해 지금까지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노래 후렴 가사 소절마다 중간에 ‘그리스도로 인해’라는 구절을 넣으면 비로소 의미가 완성됩니다. 이 찬양이 기반으로 하는 바울의 편지에도 그러한 의도가 다분한 구절들뿐입니다. 우리는 이름 없고, 죽음과 가까우며, 마음이 근심되고, 가진 것이 없지만, 그리스도로 인해 이름을 얻고, 새 생명을 얻으며, 더할나위 없이 기뻐할 수 있고, 가진게 없어도 남에게 풍성함을 베풀수 있으며, 결국 그렇기에 모든 것을 가진 자, 즉 성도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성도의 삶은 찰나 속에 영원을 노래하며 살게 됩니다. 비록 희망을 곧이곧대로 품기에는 버거운 한 걸음들이라도 우리 모두가 사랑이라는 이름의 거룩함을 지닌 ‘성도’, 즉 ‘거룩한 무리’의 삶을 살기를 기도하며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