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신 그곳에서의 충성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바울 안에 그리스도를 나타내셨다. 복음을 맡은 자가 추구해야할 것은 눈앞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그 안에 살아 계시며 역사하시고, 능력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사람은 보이는 것에 참 연약하기에 당장에 우리 앞에 보여지는 열매와 반응들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사역도, 예배의 성패도 주께 달렸고, 한 영혼이 회심하여 주께 돌아오는 것 역시 주께 달렸다. 세상의 처음과 끝이 되셔서 주의 주권과 섭리대로 이 세상을 운영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충성이란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주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나를 두신 자리에서 묵묵히 내가 맡은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부르신 그 곳에서 나의 최선의 것을 주께 드리는 것, 그것이 충성이다.
요셉의 삶에서도 이러한 충성을 본다. 그는 야곱의 집에서 누리던 모든 것을 잃고 하루아침에 애굽의 노예가 되었지만, 자신이 처한 환경을 이유로 충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맡겨진 일을 신실하게 감당했다. 그리고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고 기록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느 자리에 두시는 데에는 우리가 당장 헤아리지 못하는 뜻이 있다. 내가 원하는 환경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이 충성이 아니라, 내가 기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상황과 환경을 바꾸려하기 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두셨음을 믿고 그 자리에서 최선의 것을 드리는 것이 충성이다.
그러므로 충성의 기준은 성공이 아니라 순종이다. 열매가 많다고 충성된 것도 아니며,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다고 실패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이 무엇인지 묻고, 오늘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그것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내가 구해야 할 것은 더 좋은 환경과 나아지는 상황이 아니라, 어느 곳에 있든 주께 충성할 수 있는 믿음이다.
훗날 하나님은 성공자를 칭찬하지 않으시고, 충성자를 칭찬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이다.

